브라질의 선술집 보테쿠(boteco)에 앉으면, 무엇을 시키든 같은 잔이 나온다. 카샤사를 시켜도, 생맥주를 시켜도, 그냥 물을 달라고 해도. 두껍고 야트막하며, 아래쪽에 세로줄이 새겨진 작은 유리컵. 코푸 아메리카누(copo americano) 다. 브라질에서 가장 화려하지 않은 잔이자, 가장 많이 쓰이는 잔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잔

코푸 아메리카누는 위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살짝 좁아지는 원뿔형 텀블러다. 용량은 약 190ml로 작고, 유리는 두껍고 묵직하다. 아래쪽 몸통에는 세로 방향의 면(facet)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화려한 구석이라곤 없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이 이 잔을 브라질에서 가장 흔한 물건으로 만들었다. 보테쿠의 카운터, 가정집 찬장, 노점, 식당 — 어디에나 똑같은 잔이 쌓여 있다. 무엇을 마시느냐와 상관없이, 브라질 사람의 손에 가장 자주 쥐어지는 유리잔이 바로 이것이다.

세로줄이 새겨진 두꺼운 브라질 코푸 아메리카누 유리컵

코푸 아메리카누 — 약 190ml의 작고 두꺼운 원뿔형 잔. 아래쪽의 세로 면이 이 잔의 상징이다 (사진: Antonio Augusto R Ramos, CC BY-SA 4.0)

형태가 곧 기능이다

이 잔의 모든 특징은 이유가 있다.

두꺼운 유리는 내구성을 위한 것이다. 바쁜 선술집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 부딪히고 떨어지는 잔은 무엇보다 잘 깨지지 않아야 한다. 두툼한 벽과 묵직한 바닥은 거친 사용을 견딘다.

**아래쪽의 세로 면(facet)**은 미끄럼 방지 손잡이다. 손에 땀이 차거나 잔에 물기가 맺혀도, 세로줄이 손가락에 걸려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동시에 이 골들은 얇은 유리보다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게 잡아준다 — 손잡이 없는 잔이 손잡이 없이도 버티는 방식이다.

원뿔형은 포개기 위한 설계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으니 잔을 위로 쌓을 수 있어, 좁은 선반과 바쁜 주방에서 공간을 아낀다.

그리고 작은 크기와 일정한 용량 덕에 코푸 아메리카누는 잔을 넘어 계량 도구가 됐다. 브라질 가정의 요리법에는 "코푸 아메리카누 한 잔의 밀가루", "두 잔의 우유" 같은 표현이 흔하다. 정해진 계량컵이 없어도 누구나 같은 양을 떠올릴 수 있는, 사실상의 표준 단위인 셈이다.

보테쿠의 잔 — 카샤사부터 쇼피까지

창가에 놓인 두 개의 코푸 아메리카누

한 잔으로 모든 것을 마신다 — 카샤사, 쇼피(생맥주), 물, 주스, 커피까지. 보테쿠와 가정의 일상에 스며든 잔 (사진: Marcelo Braga, CC BY 2.0)

코푸 아메리카누가 특별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무엇에도 전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스키잔이 위스키를, 와인잔이 와인을 위한 것이라면, 이 잔은 모든 것을 위한 잔이다.

브라질의 국민 증류주 카샤사(cachaça) 를 스트레이트로도, 사탕수수 증류주에 라임과 설탕을 더한 국민 칵테일 카이피리냐(caipirinha) 로도 이 잔에 담는다. 생맥주 쇼피(chopp) 도, 갓 짜낸 과일 주스도, 한낮의 물 한 잔도 같은 잔이다. 보테쿠에서 이 잔은 술잔이자 물컵이자 주스잔이다. 잔이 음료를 규정하지 않고, 음료가 잔을 빌려 쓴다.

나지르 피게이레두와 1947년

코푸 아메리카누에는 만든 사람이 있다. 브라질의 유리 제조사 나지르 피게이레두(Nadir Figueiredo) 가 1947년 선보인 제품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잔이다. 이름의 정확한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 미국식 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흔히 전해진다 — 분명한 것은 이 잔이 브라질에서 한 회사의 제품명을 넘어 보통명사가 됐다는 점이다. 오늘날 브라질에서 "코푸 아메리카누"는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그 모양의 잔' 전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좋은 산업 디자인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코카콜라의 컨투어 병이나 러시아의 각진 유리컵(그라뇨니 스타칸)처럼, 코푸 아메리카누는 너무 흔해진 나머지 디자인으로 보이지 않게 된 디자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잔'이라고 부르지, '디자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두께, 세로 면, 원뿔형, 용량 — 그 모든 결정이 한 세기 가까이 브라질의 손에 맞춰 다듬어진 결과다.

평범함이라는 디자인

특징이유
두꺼운 유리거친 사용·낙하에 견디는 내구성
아래쪽 세로 면젖은 손에도 미끄러지지 않는 그립 + 강도
원뿔형위로 포개 보관, 공간 절약
약 190ml 일정 용량요리 계량의 사실상 표준 단위
무난한 형태술·물·주스, 무엇이든 담는 만능

세상의 많은 잔은 특별해지려 한다. 향을 모으고, 온도를 잡고, 한 가지 술을 위해 곡선을 다듬는다. 코푸 아메리카누는 정반대 길을 갔다. 어떤 음료에도 충성하지 않고, 어떤 자리에도 어울리며, 누구의 손에나 익숙한 잔. 가장 평범한 잔이 되기로 한 선택이, 결국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잔을 만들었다. 잔의 위대함이 꼭 희소함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Image Sources

코푸 아메리카누 — Antonio Augusto R Ramos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창가의 코푸 아메리카누 — Marcelo Braga / Wikimedia Commons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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