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위스키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스코틀랜드도 미국도 아니다. 인도다. 물량 기준으로 인도는 지구상 위스키의 거의 절반을 비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많은 위스키를 마시면서도 인도에는 '인도의 위스키잔'이라 부를 만한 고유한 잔이 없다. 시음에는 스코틀랜드의 글렌케언을 그대로 빌려 쓰고, 일상에는 두꺼운 락 텀블러를 쓴다.
대신 인도가 가진 것은 고유한 단위다. 인도 사람은 위스키를 잔으로 세지 않는다. **페그(peg)**로 센다.
인도의 위스키 단위, 페그
인도와 남아시아에서 위스키 한 잔은 "한 잔"이 아니라 "한 페그"다. 술집 메뉴판에도, 집에서 따를 때도 이 단위가 쓰인다.
- 초타 페그(chhota peg) — '작은 페그'. 약 30ml
- 바다 페그(bada peg) — '큰 페그'. 약 60ml
서구의 잔이 '잔의 모양'으로 마시는 방식을 규정한다면, 인도는 '따르는 양'으로 그것을 규정한다. 같은 락 텀블러를 쓰더라도, 거기에 초타를 따를지 바다를 따를지가 한 잔의 성격을 정한다. 잔은 그릇일 뿐이고, 의미는 페그라는 단위에 담겨 있다. 이것은 잔의 크기(50ml)에 음주 문화를 새긴 한국의 소주잔과 정확히 같은 원리이되, 방향이 반대다. 한국은 잔을 고정해 양을 정했고, 인도는 양을 단위로 만들어 잔을 자유롭게 두었다.
파티알라 페그 — 손가락이 곧 계량
페그 문화의 정점에 **파티알라 페그(Patiala peg)**가 있다. 초타도 바다도 넘어서는, 잔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한 잔이다. 그런데 이 페그를 재는 방법이 독특하다. 계량컵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잰다.
잔을 바닥에 두고,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가락 네 개를 가로로 모아 잔 바깥에 댄다. 그 네 손가락 높이만큼 위스키를 따르면 그것이 파티알라 페그다. 손이 크면 한 잔도 커진다. 정량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곧 계량 도구가 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그리고 가장 위험한) 한 잔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펀자브 파티알라의 마하라자 부핀데르 싱에게 닿는다. 영국 식민지 시절, 그의 궁정 팀이 영국 측 손님들과 텐트페깅(말을 달리며 창으로 말뚝을 찍는 경기) 시합을 앞두고 있었다. 전날 밤 마하라자는 손님들에게 보통보다 훨씬 큰 페그를 연거푸 권했고, 이튿날 숙취에 시달린 상대를 가볍게 눌렀다는 것이다. 그 '특대 한 잔'에 도시의 이름이 붙어 파티알라 페그가 됐다.

인도의 한 잔은 잔의 모양이 아니라 '페그'라는 양으로 정해진다. 파티알라 페그는 잔에 손가락 네 개를 가로로 대 그 높이만큼 따르는 특대 한 잔이다 (사진: DoubleGrazing, CC BY-SA 4.0)
왜 니트가 아니라 위스키-소다인가
인도에서 위스키는 향을 코로 음미하며 니트로 홀짝이는 술이 아니다. 소다나 물, 얼음을 더해 식사와 함께 길게 마시는 술이다. 페그를 따르고 소다를 채운 '위스키-소다', 물을 탄 '위스키-파니(pani, 물)'가 표준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인도의 더위 속에서 40도가 넘는 술을 니트로 천천히 굴리기란 쉽지 않다. 소다와 얼음은 도수를 낮추고 잔을 시원하게 유지해, 무더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음주에 맞는다. 또한 대중적인 인도 위스키 상당수가 향을 음미하기보다 시원하게 희석해 마실 때 더 어울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두꺼운 락 텀블러가 표준 잔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 얼음을 담고, 부딪힘을 견디고, 식사 내내 손에 쥐기 좋은 그릇.
세계 최대 위스키 나라의 두 얼굴

맥도웰스 No.1 같은 IMF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 축에 든다. 그러나 상당수가 곡물이 아닌 당밀로 만들어져, EU 기준으로는 '위스키'로 불릴 수 없다 (사진: Gargarapalvin, CC BY 4.0)
인도 위스키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IMFL(Indian Made Foreign Liquor)**이라 불리는 대중 위스키다. 맥도웰스 No.1, 오피서스 초이스 같은 브랜드는 판매량으로 세계 정상급이다. 그런데 이 위스키의 상당수는 보리 같은 곡물이 아니라 당밀(사탕수수 부산물)을 증류해 만든다. 엄밀히 말하면 럼에 가까운 제법이라, 유럽연합 기준으로는 '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페그로 세어 소다에 타 마시는, 인도 일상의 술이 바로 이쪽이다.
다른 하나의 얼굴은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인도 싱글몰트다.
3년이 12년이 되는 나라 — 열대 숙성
2004년, 방갈로르의 증류소 **암룻(Amrut)**이 인도 최초의 싱글몰트를 내놓았다. 흥미롭게도 첫 출시 무대는 인도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였다 — '인도가 만든 싱글몰트'라는 발상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그 뒤 고아의 폴 존(Paul John), 북인도의 람푸르(Rampur), 하리아나의 **인드리(Indri)**가 뒤를 이었다. 인드리는 2023년 세계 위스키 대회에서 최고상(Best in Show)을 받으며, 인도 싱글몰트가 더 이상 변방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들의 비밀은 기후다. 인도의 무더위 속에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보다 훨씬 빠르게 익는다. 술이 나무통과 격렬하게 호흡하면서, 증발로 사라지는 '천사의 몫'이 연 **10–15%**에 이른다 — 스코틀랜드의 연 2% 안팎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인도에서 3–4년 숙성한 위스키는 서늘한 스코틀랜드에서 10년 이상 묵힌 술에 버금가는 농축도를 갖는다. 빠르게 마시고 빠르게 익는 나라다운 위스키다.

고아의 폴 존을 비롯한 인도 싱글몰트는 열대 기후의 빠른 숙성을 무기로 세계 무대에 올랐다. 인도에서 3–4년은 스코틀랜드의 10년 이상에 맞먹는다 (사진: John Distilleries, CC BY-SA 4.0)
이 싱글몰트들을 시음할 때, 인도는 비로소 페그와 소다를 내려놓고 글렌케언과 코피타를 든다. 향을 코로 좇는 그 순간만큼은 세계 공통의 잔을 쓰는 것이다. 잔은 빌려왔지만, 술과 단위와 마시는 방식은 인도 고유의 것 — 그 사이 어디쯤에 인도 위스키의 정체성이 있다.

소주잔과 파티알라 페그
| 한국 소주잔 | 인도 파티알라 페그 | |
|---|---|---|
| 기준이 되는 것 | 잔의 크기 (50ml 고정) | 따르는 양 (손가락 네 개) |
| 잔의 역할 | 잔이 양을 규정 | 잔은 그릇일 뿐, 단위가 규정 |
| 마시는 법 | 그대로 비우고 다시 채움 | 소다·물·얼음을 더해 길게 |
| 문화가 담긴 곳 | 잔의 모양과 규격 | 페그라는 단위와 손의 계량 |
세계의 많은 나라가 잔의 '모양'에 음주 문화를 새겼다. 터키는 잘록한 허리에, 브라질은 두꺼운 세로줄에, 일본은 도쿠리의 좁은 목에 마시는 방식을 담았다. 인도는 다른 길을 갔다. 잔은 어디서든 빌려 쓰되, 한 잔의 '양'을 고유한 단위로 만들었다. 손가락 네 개로 재는 파티알라 페그는, 잔의 정체성이 꼭 유리의 곡선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때로 한 나라의 술 문화는 그릇이 아니라, 그 그릇을 채우는 손의 너비에 담긴다.
암룻 싱글몰트 — Vikrambj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위스키-소다 잔 — DoubleGrazing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맥도웰스 No.1 — Gargarapalvin / Wikimedia Commons (CC BY 4.0) · 폴 존 싱글몰트 — John Distilleries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암룻 퓨전 — Matt Wunderle / Wikimedia Commons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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