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서 위스키 두 잔을 나란히 받았다고 하자. 하나는 옅은 볏짚색, 하나는 짙은 적갈색. 둘 중 비싸고 오래된 쪽을 고르라면 대개 짙은 쪽을 짚는다. 진한 색이 더 오래 묵었고 맛도 진할 거라는 짐작. 잔이 투명할수록 그 색은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짐작이 맞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색은 통에서 온다
증류기에서 갓 나온 위스키는 무색이다. 보드카처럼 맑다. 색은 전부 오크통에서 나온다. 몇 년을 그 통 안에서 보내며 나무가 우러나고, 우러난 정도가 곧 색이 된다.
그러니 색을 가르는 건 나이만이 아니다. 어떤 통이었느냐가 더 크다. 버번을 담았던 아메리칸 오크 통 — 한 번 쓰고 다시 채운 리필 통 — 에서 자란 위스키는 오래 묵어도 옅은 황금빛에 머문다. 반대로 셰리를 담았던 유러피언 오크 통은 단 몇 년 만에 술을 진한 마호가니색으로 물들인다. 맥캘란이 진한 건 오래돼서가 아니라 셰리 통을 써서다.
기후도 거든다. 대만의 카발란이나 인도의 암룻은 더운 기후 탓에 숙성이 빨라, 어린 나이에도 색이 짙게 오른다. 같은 3년이라도 스코틀랜드에서 잰 술과 대만에서 잰 술은 색이 딴판이다. 색만 보고 나이나 값을 점치는 건, 사람 얼굴 그을린 정도로 나이를 맞히는 일과 비슷하다.

그리고, 색을 더할 수 있다
여기까지면 색은 자연이 남긴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스카치를 비롯한 여러 위스키에는 색소를 넣는 게 허용된다. E150a, 스피릿 카라멜이라 부르는 진한 갈색 첨가물이다. 설탕을 태워 만든 것에 가깝고, 물 말고 스카치에 합법적으로 넣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첨가물이다.
왜 넣나. 맛이 아니라 일관성 때문이다. 위스키는 통마다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12년이라도 이번 병과 다음 병의 색이 다르면 소비자는 품질이 변했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대형 브랜드는 색소를 아주 조금 더해 모든 병을 같은 색으로 맞춘다. 진열대의 12년이 늘 같은 호박색인 건 우연이 아니다.
흥미로운 예외가 미국 버번이다. 법으로 버번은 색소든 뭐든 일절 못 넣는다. 새 오크통의 탄 안쪽에서 얻은 색, 그게 전부여야 버번이다. 그러니 짐 빔이든 와일드 터키든, 잔에 따른 그 색은 100% 통에서 온 진짜다. 반면 스카치·아이리시·캐나디안은 색소를 쓸 수 있다.
맛은 변하나
여기서 애호가들이 갈린다. 브랜드는 "그 양으로는 맛에 영향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넣는 양이 워낙 적긴 하다. 반대쪽에선 많이 넣은 술에서 살짝 쓰고 탄 듯한 뒷맛, 묘한 단내가 난다고 한다. 블라인드 시음 결과는 들쭉날쭉해서, 누구는 알아채고 누구는 못 맞힌다.
맛보다 확실한 건 눈을 속인다는 점이다. 색이 짙으면 사람은 그 술을 더 진하고 묵직하다고 느낀다. 마시기도 전에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가 실제 인상까지 끌고 간다. 같은 위스키에 색만 입혀 내놓으면 더 좋게 평가받는다는 건 여러 번 확인된 이야기다. 색소는 혀보다 머리에 듣는 셈이다. 뇌가 잔을 맛본다는 이야기는 따로 적어뒀다.
그래서 어떻게 보나
색을 아예 무시하라는 건 아니다. 같은 증류소의 같은 라인이라면 색이 짙을수록 셰리 영향이 크다는 식의 정보는 분명 있다. 다만 브랜드도 통도 다른 두 술을 색만으로 줄 세우는 건 의미가 없다.
라벨에 단서가 있다. 색소를 안 쓴 술은 'natural colour'(또는 'non-coloured', 일본은 '着色なし')를 자랑처럼 적어둔다. 색이 곧 숙성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브랜드일수록 그렇다. 독일처럼 색소 첨가를 라벨에 의무로 표기하게 한 나라도 있어서, 거기 유통되는 병에는 작게 색소 사용 여부가 적힌다. 아무 표기가 없으면 넣었을 수도 있다고 보면 된다.

정작 실전에서 가장 쓸모 있는 건 단순하다. 잔을 들었을 때 색으로 그 술의 나이나 등급을 넘겨짚지 않는 것. 옅다고 어리거나 싱거운 게 아니고, 짙다고 늙거나 비싼 게 아니다. 색은 통이 남긴 흔적이지, 술의 이력서가 아니다.
잔은 색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 색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잔 바깥의 이야기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