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드로낙GlenDronach

맥캘란과 다른 길을 간 '셰리 폭탄'. 셰리에 흠뻑 적신 하이랜드 싱글몰트.
글렌드로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빌리 워커다. 한때 가동을 멈추고 잊혀가던 이 증류소를 2008년에 사들여, 묵혀둔 셰리 통 재고를 풀고 빈티지 싱글캐스크를 줄줄이 내놓으며 셰리 명가로 되살린 사람이다. 그가 발굴한 1970~90년대 원액들이 평론가와 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글렌드로낙은 '아는 사람만 아는 셰리'에서 셰리 애호가의 필수 코스로 올라섰다.
그 부활의 무게중심에 15년 리바이벌이 있다. 재고가 떨어져 한동안 단종됐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팬들이 반긴 건 단순한 재출시가 아니라 이 브랜드의 정체성이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풀 셰리 숙성은 통값이 비싸고 물량을 빼기 어려워, 단종과 부활을 오가는 줄다리기가 늘 가격에 얹힌다. 18년 알라다이스나 21년 팔러먼트가 같은 연식의 버번 숙성 몰트보다 비싼 데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오해하기 쉬운 대목은 직화 증류다. 글렌드로낙은 2005년까지 솥을 석탄불로 직접 가열하는 옛 방식을 고집한 마지막 세대였고, 이후 스팀 가열로 바꿨다. 그래서 '예전 맛이 더 좋다'는 말이 따라다니지만, 실제로 마셔보면 차이를 단정하기 어렵다. 셰리 통의 영향이 워낙 커서 증류 방식의 변화는 그 아래 묻히는 편이다. 옛 빈티지에 붙는 프리미엄은 맛의 우열만큼이나 희소성의 값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처음 들인다면 12년에서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 진한 셰리 단맛이 자기 취향인지부터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15년이나 18년으로 올라가면 된다. 맥캘란이 정돈된 셰리라면 글렌드로낙은 더 거칠고 묵직한 쪽이라, 둘을 나란히 두고 마셔보면 '셰리 폭탄'이라는 한 단어 안에도 결이 갈린다는 걸 알게 된다.
빌리 워커가 부활시킨 1970~90년대 빈티지 싱글캐스크는 경매에서 수백만원대에 거래된다. 다만 글렌드로낙의 진짜 힘은 초고가가 아니라, 같은 가격대 다른 셰리 몰트보다 진한 풀 셰리 숙성을 합리적으로 내놓는 코어 라인에 있다.
시세는 면세·소매 대략값 · 빈티지는 경매·한정가(변동 큼) — 주관 시음 아님
글렌드로낙은 셰리에 모든 걸 건다. 대부분의 위스키가 버번 통을 기본으로 쓰는 것과 달리, 여기선 스페인 페드로 히메네스·올로로소 셰리 통이 주연이다. 그래서 색이 짙고, 건포도·말린 무화과·다크 초콜릿 같은 농축된 단맛이 빽빽하다. 같은 '셰리 폭탄'이라도 맥캘란이 정제된 균형 쪽이라면, 글렌드로낙은 더 거칠고 진한 하이랜드식이다.
1826년 제임스 알라다이스가 애버딘셔 포그에 세웠다. 스코틀랜드가 밀주를 양성화한 직후 정식 면허를 받은 초기 증류소 중 하나다. 20세기 후반 부침을 겪으며 한때 가동을 멈췄지만, 2008년 빌리 워커가 인수해 셰리 명가로 되살렸다. 2016년부터 잭 다니엘스를 소유한 미국 브라운-포맨이 운영한다.
글렌드로낙은 진한 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컬트에 가깝다. 영국·유럽 몰트 애호가 사이에서 '가성비 셰리'로 오래 회자됐고, 15년 리바이벌의 부활은 작은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도 셰리 입문자가 맥캘란 다음으로 손이 가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단, 단맛이 워낙 짙어 가벼운 술을 찾는 사람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
향이 무겁고 달며 기름지다. 향을 위로 모으는 튤립형 잔 — 글렌케언이나 코피타 — 이 정석이고, 큰 얼음은 셰리 향을 닫아 아깝다. 대부분 43~46%라 물은 거의 필요 없지만, 캐스크 스트렝스 배치엔 물 한 방울이 농축된 단맛을 풀어준다. 받침을 잡고 차분히 두되, 향이 안 열리면 볼을 감싸 살짝 데운다.
출처 · 제조·라인업 — glendronachdistillery.com · 빈티지는 경매·한정가 · 제품 이미지 — GlenDrona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