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나 연말 모임에서 넓적한 샴페인 잔이 나오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저 잔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본떠 만든 거라고. 말하는 쪽도 반쯤 농담이고 듣는 쪽도 반쯤 믿는다.

이 이야기의 문제는 사실 여부가 아니라 연대다.

잔이 왕비보다 먼저 태어났다

쿠프(coupe)라 불리는 이 얕고 넓은 잔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건 1663년, 영국에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에 태어났다. 잔이 아흔 해쯤 먼저다.

전설이 가리키는 이름이 자꾸 바뀐다는 것도 힌트다. 어떤 판본에서는 앙리 2세의 정부였던 디안 드 푸아티에가, 어떤 판본에서는 퐁파두르 부인이, 더 거슬러 올라가면 트로이의 헬레네가 주인공이다. 특정한 근거가 있다면 이름이 이렇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인물만 갈아 끼우면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이야기 틀인 것이다.

바 카운터에 놓인 넓적한 쿠프 잔
쿠프. 얕고 넓은 잔이라 한 모금에 가깝고, 부딪히면 소리가 크다. 지금은 샴페인보다 칵테일 쪽에서 더 자주 보인다 (사진: Krista, CC BY 2.0)

그런데 진짜로 가슴 모양 그릇이 있긴 했다

이 전설이 이토록 끈질긴 이유는 실재하는 물건이 하나 섞여 들어갔기 때문이다.

1787년, 루이 16세는 랑부예에 지은 왕비의 낙농장(Laiterie de la Reine)에 쓸 세브르 도자기 65점을 주문했다. 그 안에 자트 테통(jatte-téton) 이 네 점 있었다. 젖꼭지가 달린 반구형 사발이 염소 머리 세 개로 된 다리 위에 얹힌 물건이다. 디자인은 장자크 라그르네가 맡았고, 지금은 세브르 도자기 박물관에 있다.

용도는 우유였다. 샴페인이 아니라 우유. 당시 유럽 귀족들 사이에는 시골 낙농장을 꾸며 놓고 신선한 우유를 마시는 취미가 유행했고, 랑부예의 낙농장도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왕비는 그 그릇 세트가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이야기가 붙어 있다. 깜짝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우유 사발이 백 년쯤 지나 샴페인 잔으로 바뀌어 전해진 셈이다. 소문이 물건을 옮겨 타는 방식이 대체로 이렇다.

원조는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가슴 모양 잔이라는 발상 자체는 훨씬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에는 마스토스(mastos) 라는 잔이 있었다. 그리스어로 유방이라는 뜻 그대로, 아래가 뾰족하고 끝에 젖꼭지가 달린 잔이다.

손잡이가 둘 달린 그리스 흑화식 마스토스 잔 — 아래가 뾰족하고 끝에 돌기가 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의 흑화식 마스토스. 바닥이 뾰족해 내려놓을 수 없으니 받는 순간부터 비울 때까지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바닥이 뾰족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심포시온에서 잔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손에 쥔 채로 비우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라는 설계다. 세울 수 없게 만들어 참여를 강제하는 잔은 여러 문화권에 있는데, 마스토스는 그중에서도 이른 축에 속한다.

그러니까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 가슴 모양 잔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에 있었고, 얕고 넓은 쿠프는 17세기 영국에서 나왔으며, 왕비의 가슴 사발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우유를 담았다. 세 개는 서로 관계가 없다. 전설은 이 셋을 하나로 뭉쳐 놓은 것이다.

쿠프가 밀려난 건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샴페인은 쿠프에 나왔다. 지금은 거의 플루트다. 이 교체는 유행보다 물리에 가깝다.

샴페인 한 병에는 대략 12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다. 병 안 압력은 6기압 근처. 이 기체를 상온에서 풀어놓으면 5리터쯤 된다. 750밀리리터 병에서 나오는 기체가 그 병의 여섯 배가 넘는다는 뜻이다.

이 기체가 얼마나 오래 남느냐를 결정하는 건 표면적이다. 쿠프는 액체 표면이 넓고 깊이가 얕다. 기포가 짧은 거리를 올라와 곧바로 터지고, 표면 전체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간다. 플루트는 표면이 좁고 깊어서 같은 양이 훨씬 천천히 나간다. 잔에 따라 놓고 십 분쯤 지나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기포 줄기가 여러 갈래로 올라오는 샴페인 플루트 여러 개
기포는 유리 표면 아무 데서나 생기지 않는다. 벽에 붙은 미세한 섬유 안에 갇힌 공기가 출발점이 된다 (사진: tristanf, CC BY 2.0)

기포에 대한 오해도 하나 있다. 기포가 유리의 흠집에서 생긴다는 설명이 흔한데, 랭스대학의 제라르 리제벨레르 연구팀이 확인한 바로는 대부분의 기포는 잔 벽에 남은 셀룰로스 섬유 안에 갇힌 공기에서 시작된다. 행주로 닦을 때 묻은 실오라기, 공기 중의 먼지 같은 것들이다. 같은 팀이 2014년에 다시 계산한 잔 하나당 기포 수는 약 100만 개였다. 그전까지 흔히 인용되던 1,500만 개는 빠져나간 기체를 전부 기포로 셈한 과대 추정이었다.

여기서 조금 우스운 결론이 따라온다. 잔을 완벽하게 헹구고 먼지 하나 없이 말리면 기포가 오히려 잘 안 생긴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샴페인 잔 중에는 바닥에 레이저로 일부러 흠집을 새겨 기포가 한 줄기로 곧게 올라오게 만든 것들이 있다. 보기 좋으라고 만든 결함이다.

잔을 어떻게 닦았는지가 잔 안의 풍경을 바꾼다는 건 위스키 잔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는 세제 잔여물이 다리를 지우고, 여기서는 행주 실오라기가 기포를 만든다. 방향만 반대다.

그런데 플루트도 정답은 아니다

플루트가 거품을 오래 잡아 두는 건 맞다. 문제는 그 잡아 둔 기체가 어디로 가느냐다.

리제벨레르 연구팀이 2012년에 발표한 측정이 있다. 잔 위쪽 공간의 기체 이산화탄소 농도를 재 봤더니, 좁은 플루트 위가 넓은 쿠프 위보다 거의 두 배 높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관능 평가에서 플루트로 마신 쪽이 코에 자극이 더 크다고 답했다.

이산화탄소는 향 성분이 아니라 자극 성분이다. 농도가 높으면 삼차신경을 건드려 코가 따갑고, 그 자극이 정작 맡아야 할 향을 덮는다. 위스키에서 고도수를 노징할 때 에탄올 증기가 방해하는 것과 구조가 비슷하다.

그래서 요즘 샴페인 하우스들은 플루트를 고집하지 않는다. 크뤼그나 돔 페리뇽처럼 향을 앞세우는 쪽은 화이트와인 잔이나 튤립형을 권한다. 아래는 넉넉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다. 거품은 어느 정도 지키면서 이산화탄소는 빠져나갈 자리를 준다.

그러면 쿠프는 언제 쓰나

쿠프를 층층이 쌓아 만든 샴페인 타워
쿠프가 아직 대체 불가능한 자리. 평평한 테두리끼리 맞물려야 탑이 서고, 위에서 부으면 아래로 흘러내린다. 플루트로는 이 그림이 안 나온다 (사진: kennejima, CC BY 2.0)

향과 거품만 따지면 쿠프는 불리하다. 그래도 쓸 자리가 있다.

칵테일이 첫 번째다. 거품이 없거나 적은 술을 차갑게 잔에 담아 내는 경우, 넓은 면적은 단점이 아니라 향을 빨리 여는 장점이 된다. 사이드카, 다이키리, 위스키 사워를 쿠프에 내는 바가 많은 게 그래서다. 마티니 잔보다 흘리기도 덜하다.

두 번째는 샴페인 타워다. 쿠프의 평평한 테두리는 잔을 쌓기 위한 구조나 다름없다. 이건 플루트로 대체가 안 된다.

세 번째는 소리다. 넓적한 잔은 부딪힐 때 소리가 크고 길게 남는다. 건배가 소리를 위한 행위라는 걸 감안하면, 쿠프는 그 목적에 관해서는 여전히 가장 잘 만들어진 잔이다.

전설 쪽이 재미있는 이야기인 건 분명하다. 다만 이 잔이 실제로 겪은 일 — 17세기 영국에서 나와, 20세기에 파티의 상징이 됐다가, 물리학 때문에 밀려나고, 칵테일 바에서 다시 살아난 — 도 그만큼 굴곡이 있다.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지는 취향 문제겠지만, 적어도 뒤쪽은 사실이다.

G. Liger-Belair et al., Monitoring Gaseous CO2 and Ethanol above Champagne Glasses: Flute versus Coupe, and the Role of Temperature, PLOS ONE, 2012 · G. Liger-Belair, How Many Bubbles in Your Glass of Bubbly?, The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B,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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