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서 술은 기호품이 아니라 보급품이었다. 마실 물이 며칠 만에 상하는 목선에서, 알코올이 조금 들어간 액체는 그나마 오래 버티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 영국 해군의 표준 배급은 하루 맥주 1갤런, 약 4.5리터였다. 도수가 낮은 스몰 비어를 하루 종일 나눠 마시는 식이다. 문제는 이 맥주가 열대 항로에서 몇 주를 못 간다는 것이었다. 통이 부풀고 시어지면 그 다음은 물뿐인데, 물은 더 빨리 상했다.
자메이카가 바꾼 것
1655년 영국이 자메이카를 점령하면서 카리브해 함대는 현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술을 손에 넣었다. 럼이다. 브랜디나 아락을 유럽에서 실어 오는 것보다 싸고, 무엇보다 상하지 않았다. 부피도 훨씬 작았다. 맥주 4.5리터가 차지하던 자리를 럼 반 파인트, 280밀리리터가 대신할 수 있었다.
1731년 해군 규정은 이 교환 비율을 아예 명문화한다. 맥주 1갤런 = 럼 반 파인트. 장부상으로는 깔끔한 계산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40도가 넘는 술 280밀리리터를 한 번에 받아 든 수병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껴 두었다가 한꺼번에 마시는 사람이 나왔고, 갑판 위에서 발을 헛디디는 사고가 늘었다. 밧줄과 돛과 대포를 다루는 공간에서 이건 규율 문제가 아니라 안전 문제였다.
1740년 8월, 물을 타라
서인도 함대 사령관 에드워드 버논 제독이 내린 명령은 지금 봐도 실용적이다. 1740년 8월 21일자 함대 명령 349호의 요지는 이렇다.
럼 반 파인트를 물 1쿼트에 타서 희석할 것. 하루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에 나눠,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한 번,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한 번 지급할 것. 그리고 맛을 위해 설탕과 라임을 넣고 싶은 사람은 자기 돈으로 사서 넣으라는 단서까지 붙었다.
이 명령이 노린 것은 두 가지다. 도수를 4분의 1로 떨어뜨리는 것, 그리고 물을 탄 순간부터 술이 상하기 시작하니 모아 둘 수 없게 만드는 것. 후자가 더 중요했다. 배급을 저축할 수 없게 만들면 폭음도 사라진다.
이 물 탄 럼을 수병들은 제독의 별명을 따서 불렀다. 버논은 그로그램(grogram)이라는 거친 혼방 천으로 지은 외투를 늘 걸치고 다녀 '올드 그로그(Old Grog)'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물 탄 럼이 그로그가 됐다.

럼 통에서 그로그가 나오는 장면. 통에 박힌 글자는 "THE KING GOD BLESS HIM"으로, 재위한 군주에 따라 문구가 바뀌었다 (그림: Robert Sargent Austin, Public Domain)
영어에서 비틀거린다는 뜻의 groggy가 여기서 나왔다. 물을 타서 순하게 만든 술인데도 그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가 남았다는 건, 희석이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임 이야기는 조금 더 정확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버논이 라임을 언급한 건 맛 때문이었지 괴혈병 때문이 아니었다. 감귤류가 괴혈병을 막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인 사람은 1747년의 제임스 린드였고, 해군이 레몬주스를 공식 지급하기 시작한 건 1795년이다. 반세기 넘는 간격이 있다. 그로그에 라임이 들어가 있던 덕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그걸 노린 처방은 아니었다.
화약 위에 붓는 시험
배급 럼에는 늘 의심이 따라다녔다. 보급 과정에서 누군가 물을 더 탔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도수를 잴 기구가 없던 시절에 쓰였다고 전해지는 방법이 화약 시험이다.
럼을 화약 위에 붓고 불을 붙여 본다. 화약이 그대로 타면 도수가 충분한 것이고, 젖어서 불이 붙지 않으면 물이 너무 많이 섞인 것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하한이 알코올 57퍼센트 부근이고, 영국의 100 프루프가 57.15퍼센트다. 진이나 럼에 붙는 '네이비 스트렝스(Navy Strength)'라는 표현의 뿌리가 여기 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실제로 갑판에서 매번 벌어지던 관행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보급 담당자가 창고에서 확인하던 절차였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고, 지금 전해지는 형태에는 뱃사람들의 전설이 섞여 있다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실제 배급 럼의 도수도 시대에 따라 내려가서, 후기에는 54.5도(95.5 프루프)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오의 '업 스피리츠'
배급은 하루 일과의 한 축이었다. 정오 무렵 갑판에 "업 스피리츠(Up spirits)" 호령이 떨어지면 럼 통이 나왔다. 놋쇠 글자로 "The Queen, God Bless Her"가 박힌 그 통은 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기 중 하나였다.
각 메스(mess), 그러니까 함께 먹고 자는 대여섯 명 단위의 조에서 대표 한 명이 나와 '패니(fanny)'라 부르는 금속 통에 자기 조 몫을 받아 갔다. 거기서 다시 각자의 몫으로 나뉜다.
계급에 따라 받는 형태가 달랐다. 하사관 이상은 희석하지 않은 럼을 그대로 받았고, 그 아래 수병들은 물을 탄 그로그로 받았다. 니트로 받은 사람은 원한다면 모아 둘 수 있었지만, 그로그를 받은 사람은 그럴 수 없었다. 배급 방식 자체가 계급이었다.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호의 그로그 통. 1970년 배급이 끝날 때까지 쓰였다. 놋쇠 글자를 박은 이 통은 배에서 가장 잘 관리되는 집기 중 하나였다 (사진: Hammersfan, CC BY-SA 4.0)
한 사람 몫은 '톳(tot)'이라 불렀다. 후기 기준으로 8분의 1 임페리얼 파인트, 약 71밀리리터다. 소주잔이 50밀리리터에 정착한 것이나 샷 잔이 나라마다 다른 숫자로 굳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잔의 크기를 정한 건 미감이 아니라 규정이었다.
시퍼스, 걸퍼스, 샌디 바텀
톳이 흥미로운 건 그것이 술이자 동시에 화폐였다는 점이다.
배 위에서는 현금이 쓸모없다. 대신 매일 정확히 같은 양이 나오는 71밀리리터가 그 자리를 채웠다. 당직을 대신 서 주면, 세탁을 맡아 주면, 곤란한 상황을 덮어 주면 톳으로 갚았다. 갚는 단위에도 이름이 붙었다.
시퍼스(sippers) — 입술만 대는 한 모금. 사소한 신세를 갚는 단위다.
걸퍼스(gulpers) — 목젖이 한 번 움직이는 큰 한 모금. 제법 큰 부탁의 값이다.
샌디 바텀(sandy bottom) — 바닥까지. 오늘 내 몫 전부를 넘긴다는 뜻이고, 그만큼 큰 빚을 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잔은 계량 도구인 동시에 계약서였다. 한 모금의 크기를 두고 시비가 붙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퀘이흐가 우정을 확인하는 잔이었다면, 해군의 톳은 채무를 정산하는 잔이었던 셈이다.
한 세기에 걸친 감량
배급량은 계속 줄었다. 1740년의 반 파인트가 1824년에 4분의 1 파인트로 줄었고, 1850년 그로그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8분의 1 파인트, 하루 한 번으로 줄었다. 저녁 배급은 이때 없어졌다.
동시에 선택지가 생겼다. 술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로그 머니'라는 현금을 대신 지급했다. 절주 운동의 영향이기도 했고, 차와 코코아가 배에 보급되기 시작한 결과이기도 했다.
장교의 배급은 1881년에 폐지됐다. 수병의 배급만 그 뒤로 90년을 더 갔다.
1970년 7월 31일
20세기 중반이 되자 배가 달라졌다. 미사일과 레이더와 원자로를 다루는 군함에서, 정오에 71밀리리터의 고도수 럼을 마시고 오후 근무에 들어가는 관행은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웠다.
1970년 1월, 영국 하원에서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나중에 '대럼논쟁(Great Rum Debate)'이라 불린 자리다. 결론은 폐지였고, 마지막 배급일은 그해 7월 31일로 정해졌다.
그날 배들에서 벌어진 일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검은 완장을 찬 수병들이 있었고, 톳을 바다에 부어 보내는 모의 장례식을 치른 배도 있었다. 관을 짜서 갑판을 도는 행사를 벌인 곳도 있었다. 이날을 **블랙 톳 데이(Black Tot Day)**라 부른다.

폐지의 대가로 캔맥주 배급이 허용됐고, 남은 예산은 수병 복지 기금으로 넘어갔다. 캐나다 해군은 1972년, 뉴질랜드 해군은 1990년에 같은 길을 갔다. 미 해군은 훨씬 앞선 1914년, 조지퍼스 대니얼스 해군장관의 일반명령 99호로 함내 음주를 금지했다. 커피를 '컵 오브 조'라 부르게 된 게 그 대니얼스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원학적 근거는 약한 속설에 가깝다.
남은 것
지금 로열 네이비에도 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스플라이스 더 메인브레이스(splice the mainbrace)'라는 명령이 남아 있다. 원래는 큰 손상을 수리한 뒤 전원에게 한 잔을 돌리던 관행인데, 지금은 왕실의 경사 같은 특별한 날에만, 그것도 군주의 재가를 받아 내려진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명령이다.
민간에는 브랜드가 남았다. 배급 럼의 배합을 이어받았다고 내세우는 퍼서스(Pusser's)는 이름부터가 배 위의 물자 담당관 purser를 뱃사람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블랙 톳 데이를 기념해 병입한 술도 나온다. 300년의 관행이 상품명으로 남는 방식이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그 시절의 계량컵과 톳 잔이 거래된다.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다. 놋쇠나 양철로 만든 작은 통, 눈금 하나. 정교한 크리스털 잔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물건이고, 흔들리는 갑판에서 깨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형태다.
그런데 이 잔들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떤 잔은 술을 더 맛있게 마시려고 만들어지고, 어떤 잔은 정해진 양을 정확히 나누려고 만들어진다. 해군의 톳은 후자였다. 하루에 한 번, 모두에게 똑같이, 그 이상은 안 된다 — 잔 하나가 그 세 가지를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럼 계량컵 — Tim Sheerman-Chase / Wikimedia Commons (CC BY 4.0) · 그로그 배급 그림 — Robert Sargent Austin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HMY 브리타니아 그로그 통 — Hammersfa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킹 조지 5세함 럼 배급 — S J Beadell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