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진부터 보자.

배가 불룩한 도자기 주전자다. 그런데 목 부분이 이상하다. 구멍이 줄줄이 뚫려 있어서, 목이라기보다 바구니에 가깝다. 입구 테두리에는 찻주전자 주둥이를 줄여 놓은 것 같은 작은 관이 세 개 붙어 있다.
이 주전자에 맥주를 가득 채워서 당신 앞에 놓았다고 해 보자. 조건은 하나.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마실 것.
기울이면? 술은 목의 구멍으로 쏟아진다. 입구에 입을 대고 들이켜려 해도 마찬가지다. 술이 입에 닿기 전에 목을 지나야 하는데, 그 목이 구멍투성이다.
어떻게 마실지 잠깐 생각해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좋다.
손잡이가 빨대다
답은 주둥이를 빠는 것이다. 다만 그냥 빨면 안 된다.
퍼즐 저그의 입구 테두리는 속이 빈 관으로 되어 있다. 고리 모양 관이 입구를 한 바퀴 두르고 있고, 테두리에 붙은 작은 주둥이들은 전부 이 관으로 이어진다. 관은 다시 손잡이 속으로 내려간다. 손잡이도 속이 비어 있다. 그리고 손잡이 아래쪽 끝은 주전자 몸통 안쪽, 바닥 가까운 곳으로 뚫려 있다.

그러니까 주전자 전체가 하나의 굽은 빨대인 셈이다. 바닥에 고인 술을 손잡이를 거쳐 테두리까지 끌어올려 주둥이로 마시는 구조다.
문제는 이 빨대에 구멍이 여러 개라는 것이다. 주둥이가 세 개면 입은 하나밖에 못 대니까 나머지 둘은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이 된다. 빨대 옆구리에 구멍이 나 있으면 아무리 빨아도 공기만 들어온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나머지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막아야 한다. 그걸로 끝도 아니다. 손잡이 어딘가에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 더 뚫려 있다. 대개 손잡이 위쪽 안쪽 면이나 아래쪽 이음매처럼 눈에 잘 안 띄는 곳이다. 이것까지 막아야 비로소 관 안이 밀폐되고, 빨면 술이 올라온다.
런던 박물관의 소장품 설명은 이 요령을 한 줄로 정리해 놨다. 주둥이 하나만 남기고 전부 막고, 손잡이 밑동의 작은 구멍도 막을 것.
손가락이 모자라다 싶으면 제대로 이해한 거다.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고, 다른 손 손가락으로 주둥이 두 개와 손잡이 구멍을 막고, 남은 주둥이를 입에 문다. 처음 보는 사람이 술자리에서 이걸 알아낼 확률은 높지 않다.
사이펀이 아니다
퍼즐 저그를 설명하는 글을 보면 손잡이가 '사이펀'처럼 작동한다고 쓴 경우가 꽤 있다.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사이펀은 출구가 액체 표면보다 낮아야 저절로 흐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사람이 할 일이 없다. 퍼즐 저그는 출구인 주둥이가 술 표면보다 높은 테두리에 있다. 빨기를 멈추면 술은 손잡이 속으로 도로 내려간다. 사람이 빨아서 관 속 압력을 낮추면, 주전자 안 술 표면을 누르는 대기압이 술을 관 위로 밀어 올린다. 빨대와 같은 원리다. 손잡이 구멍을 막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구멍이 열려 있으면 압력이 낮아지지 않는다.
사이펀으로 작동하는 술잔은 따로 있다. 조선의 계영배다. 정해진 선을 넘겨 따르면 잔 속 기둥의 U자 관을 타고 술이 바닥으로 다 빠져나간다. 계영배는 욕심을 부린 사람의 술을 가져가고, 퍼즐 저그는 요령을 모르는 사람의 옷을 적신다. 둘 다 장난처럼 생긴 잔이지만 하는 말이 다르다.
내기를 걸겠소
퍼즐 저그에는 몸통에 시가 적힌 것이 많다. 대개 도발이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에 있는 1765~1770년경 리버풀산 저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ere Gentleman come try your skill / I'll hold a wager if you will / That you dont drink this Liquor all / Without you spill or let some fall"
신사 양반, 이리 와서 솜씨 한번 보시오. 원한다면 내기를 걸겠소. 이 술을 다 마시지 못할 거라고. 흘리거나 떨어뜨리지 않고는.
같은 박물관의 1770~1775년경 브리스틀산으로 보이는 저그는 더 짧다.
"TRY HOW TO DRINK / AND NOT TO SPILL / AND PROVE THE / UTMOST OF YOUR SKILL"
어떻게 마시나 해 보시오, 흘리지 말고. 그리고 솜씨를 다 보여 주시오.
'신사 양반 솜씨 한번 보시오'로 시작하는 문구는 리버풀 저그 여러 점에서 조금씩 바뀌어 나온다.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 재단이 가진 1755년경 리버풀 저그에는 "에일이든 와인이든 물이든 채워 보시오(Fill me with Ale Wine or Water)"로 시작하는 시가 있는데, 재단은 이 시가 여러 저그에 쓰일 만큼 당시 유행했다고 설명한다. 도공들이 잘 팔리는 문구를 돌려 썼다는 얘기다.

이 시들이 말해 주는 건 퍼즐 저그가 선술집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단골이 처음 온 손님에게 한 잔 사겠다며 내밀고, 손님이 맥주를 셔츠에 쏟으면 모두가 웃고 내기 돈은 단골이 가져간다. 영국에서는 '티징 피처(teasing pitcher, 놀리는 주전자)', '웨이저 저그(wager jug, 내기 주전자)'라고도 불렀다. 어떤 저그는 목 아래나 손잡이 밑에 구멍을 하나 더 숨겨 둬서, 요령을 아는 척하는 사람까지 골탕 먹였다.
결혼 선물이 된 장난감
그렇다고 싸구려 장난감 취급만 받은 건 아니다.
퍼즐 저그는 17세기 런던의 템스강 남쪽, 램버스와 서더크 일대 도공들이 많이 만들었다. 주석 유약을 입혀 하얗게 구운 뒤 파란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델프트웨어다. 중국 청화백자를 흉내 낸 네덜란드 델프트 도기 기법이 영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런던 박물관에는 이 시기 저그 하나가 있다. 몸통에 'I N M 1655'라고 적혀 있다. 박물관은 이것이 1655년 8월 8일 런던 세인트 피터 폴스 워프 교회에서 올린 존 노트와 마거릿 챔피언의 결혼을 기념한 것으로 본다. I N은 존 노트, M은 마거릿이다. 결혼 선물로 장난 주전자를 받은 셈이다. 신혼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꺼냈을지도 모르겠다.
토론토 가디너 박물관에는 찰스 2세의 초상과 'CR2'라는 글자를 넣은 저그가 있다. 박물관은 1660년 대관식에 맞춰 만들었을 거라고 본다. 왕정이 돌아온 해에 왕의 얼굴을 넣은 술 내기 주전자를 만든 것이다. 축하하는 방법치고는 꽤 장난스럽다.
셋이 붙은 잔에서 시작됐다
퍼즐 저그의 친척으로 '퍼들링 컵(fuddling cup)'이 있다. fuddle은 '술에 취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작은 꽃병 모양 잔 서너 개를 꼬인 손잡이로 한데 붙여 놓은 물건이다. 잔들은 몸통 속 구멍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한 잔만 마시려 해도 다른 잔의 술까지 같이 빠져나온다. 하나만 마시는 건 불가능하고, 다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거나 둘 중 하나다.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퍼들링 컵은 1630~1650년경 런던에서 만든 것이고, 가디너 박물관 것에는 1639년이라는 연도가 적혀 있다.

퍼들링 컵은 '한 잔만'이라는 핑계를 막는 장난이고, 퍼즐 저그는 '마실 줄은 아냐'고 묻는 장난이다. 같은 시기 같은 동네 도공들이 둘 다 만들었다.
주교를 놀리는 700년 전 주전자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퍼즐 저그로 흔히 꼽히는 건 데번주 엑서터의 왕립 앨버트 기념 박물관(RAMM)에 있는 '엑서터 퍼즐 저그'다. 1300년 무렵 프랑스 서부 생통주 지방에서 만들어 바다 건너 엑서터로 온 것이다. 1899년 엑서터 사우스 스트리트에서 조각난 채 발견됐고, 1930년대에 대영박물관 복원가가 다시 붙였다.
몸통이 여러 층짜리 탑 모양이다. 창문마다 젊은 여인들이 몸을 내밀고 있고, 아래층에서는 악사들이 연주를 한다. 그리고 주교 지팡이를 든 주교 두 명이 있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저그 안쪽에 있는 이 주교들은 옷을 걸치지 않았다. 중세 성직자의 도덕을 비꼬는 장면으로 읽힌다. 박물관은 이 저그의 주인이 유머 감각 있는 주교였을 수도, 교회를 놀리고 싶은 누군가였을 수도 있다고 적었다.
다만 박물관 스스로도 이게 엄밀한 의미의 퍼즐 저그는 아니라고 말한다. 술을 쏟게 만드는 숨은 구멍이 없다. 속이 빈 손잡이로 술이 흘러가는 구조만 있다. 게다가 1930년대 복원 때 손을 많이 대서, X선으로 찍어 보니 손잡이 일부와 인물 조각 일부가 20세기에 덧붙인 것이었다. '가장 오래된 퍼즐 저그'라는 타이틀에는 이런 단서가 붙는다. 정확히는 퍼즐 저그로 이어지는 장난 주전자의 조상쯤 된다.
지금도 만든다
퍼즐 저그는 그 뒤로도 영국과 북유럽 곳곳에서 만들어졌고,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다시 한번 유행했다. 선술집 탁자에도 올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에서 손님과 술 내기를 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웨일스의 버클리 도요지처럼 지방 도공들이 만든 소박한 것도 많다.
요즘에도 영국과 미국의 도예가들이 물레로 퍼즐 저그를 만든다. V&A는 도예가 미셸 에릭슨이 소장품 저그를 재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손잡이 아래 숨은 구멍과 통로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구조를 알고 봐도 손잡이에 그 구멍을 뚫는 걸 보면 조금 얄밉다.
혹시 박물관에서 퍼즐 저그를 보게 되면 손잡이부터 살펴보자. 어딘가에 바늘구멍만 한 구멍이 있을 거다. 300년 전 선술집에서 그걸 못 찾은 사람이 셔츠를 적셨다.
Victoria and Albert Museum, 퍼즐 저그 소장품 기록(리버풀 1765~1770, 브리스틀 275-1896) 및 「How was it made? A puzzle jug」 · Michael Archer, Delftware: The Tin-Glazed Earthenware of the British Isles, V&A, 1997 · London Museum, 퍼즐 저그(1655) 소장품 기록 · Gardiner Museum, 찰스 2세 퍼즐 저그·퍼들링 컵 소장품 기록 · Fitzwilliam Museum, 퍼들링 컵 소장품 기록 · Royal Albert Memorial Museum, Exeter Puzzle Jug 소장품 기록 · Colonial Williamsburg Foundation, 퍼즐 저그(1755년경) 소장품 기록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퍼즐 저그(45.12.10, 30.70.3)·퍼들링 컵(38.73.11) 소장품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