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과일 브랜디 **팔린카(pálinka)**를 제대로 마실 때 쓰는 잔은, 위스키를 진지하게 맡을 때 쓰는 잔과 모양이 거의 같다. 받침과 다리가 있고, 배가 둥글게 부풀었다가 입구로 가면서 좁아지는 튤립 모양. 글렌캐런이나 코피타를 본 사람이라면 낯익은 실루엣이다. 만드는 술도 마시는 나라도 다른데 잔의 생김새가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잔이 푸는 문제가 같기 때문이다 — 어떻게 향을 흩어지지 않게 모아 코로 올려보낼 것인가.
향을 모으는 튤립
좋은 팔린카 잔은 받침으로 서고, 다리로 쥐며, 볼은 튤립처럼 생겼다. 아래는 좁고 가운데가 가장 넓게 부풀었다가, 위로 가면서 다시 좁아지고 입술이 닿는 끝에서 살짝 바깥으로 벌어진다.
이 곡선에는 분명한 쓰임이 있다. 가장 넓은 배 부분은 술이 공기와 닿는 면을 넓혀, 과일 향이 충분히 피어오르게 한다. 그렇게 피어오른 향은 좁아지는 윗부분을 지나며 한곳으로 모여, 코로 곧장 올라간다. 끝이 살짝 벌어진 것은 입술에 닿는 느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향을 넓게 펼쳐 모은 뒤 한 줄기로 좁혀 올려보내는 것 — 위스키 노징 글라스가 하는 일과 똑같다.

향을 모으는 튤립형 잔. 배가 넓어 향이 충분히 피어오르고, 좁아지는 입구가 그 향을 한곳으로 모아 코로 올려보낸다 — 위스키 노징 글라스와 같은 원리다.
그래서 마시는 법도 위스키를 음미할 때와 비슷하다. 팔린카는 차게 얼려 마시는 술이 아니다. 너무 차가우면 과일 향이 닫혀버리기 때문에, 상온에 가깝게 두고 향을 먼저 맡은 다음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신다. 한 잔에 2~4센티리터, 그러니까 한두 모금이면 충분하다.
한 입에 털던 잔

전통적으로 팔린카를 마시던 작은 잔. 향을 음미하기보다 한 입에 털어 넣는 데 맞는 형태다. 튤립 잔은 비교적 최근에야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팔린카가 늘 이런 튤립 잔에 담겼던 건 아니다. 오래된 헝가리 시골에서 팔린카는 향을 음미하는 술이라기보다 하루를 여는 한 모금이었다. 작고 단순한 잔 — 헝가리어로 '펠레시(feles)', 독일어에서 온 '스탐페들리(stampedli)' 같은 이름으로 불린 작은 잔 — 에 따라 아침부터 한 입에 털어 넣곤 했다. 집에서 내린 거친 팔린카에는 향을 모을 잔이 필요 없었다. 빨리, 따뜻하게, 한 번에 넘기는 술이었으니까.
지금도 시골이나 격식 없는 자리에서는 이 작은 잔이 흔하다. 튤립형 잔은 팔린카를 '맡는 술'로 대접하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최근에 자리 잡은 형태다.
팔린카란 무엇인가
팔린카는 과일로만 빚는 증류주다. 자두(실바), 살구, 배, 체리 같은 과일을 발효시켜 증류하는데, 진짜 팔린카에는 설탕도 향료도 섞지 않는다. 오로지 과일과 그 향뿐이다. 그래서 좋은 팔린카는 무색투명하면서도 잔을 가까이 대면 어떤 과일로 만들었는지가 향으로 또렷이 드러난다. 바로 이 향이 핵심이라, 향을 모으는 잔이 의미를 갖는다.
팔린카라는 이름은 법으로 보호된다. 유럽연합은 '팔린카'라는 명칭을 헝가리(그리고 살구 브랜디에 한해 오스트리아 일부 주)에서 그 나라 과일로, 그곳에서 증류·병입한 술에만 쓸 수 있게 정해 두었다. 헝가리는 팔린카를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헝가리쿰')으로 지정했고, 2008년에는 이른바 '팔린카 법'으로 품질 기준을 끌어올렸다.
잔이 바뀐 이유
작은 잔에서 튤립 잔으로의 변화는, 팔린카라는 술 자체의 위상이 달라진 일과 맞물려 있다. 한때 팔린카는 집집마다 대충 내려 마시는 거친 시골 술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 품질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양조장들이 늘고, 법으로 기준이 정해지면서, 팔린카는 향과 만듦새를 따지는 고급 증류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술의 격이 올라가자 잔도 따라 바뀌었다. 한 입에 털어 넘기던 작은 잔으로는, 애써 살린 과일 향을 음미할 수 없으니까. 향을 모아 천천히 맡는 튤립 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위스키가 싸구려 취급을 벗고 노징 글라스로 옮겨간 것과 똑같은 과정이, 헝가리의 과일 브랜디에서도 일어난 셈이다.
잔이 일러주는 것
잔의 모양은 그 술을 어떻게 대하라는 안내이기도 하다. 한 입에 털어 넣는 작은 잔은 "빨리 넘겨라"라고 말하고, 향을 모으는 튤립 잔은 "먼저 맡고 천천히 마셔라"라고 말한다. 팔린카가 후자의 잔을 갖게 됐다는 것은, 이 술이 그렇게 대접받을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다. 만드는 술은 위스키와 다르지만, 향을 가두는 그 튤립의 곡선만큼은 두 술이 똑같이 도달한 답이다.
튤립형 노징 잔 — Stefan Giesber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전통 팔린카 잔(살구 팔린카) — Traumrune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