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바에 처음 가면 괜히 긴장된다. 잔을 어디 잡아야 하는지, 건배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향 좀 맡아본다고 코를 들이밀었다가 알코올에 콧속이 얼얼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다.
먼저 마음 편한 이야기부터. 위스키잔에 엄격한 규칙 같은 건 거의 없다. 와인처럼 복잡한 격식도 아니고, 옆에서 당신 손 모양을 채점하는 사람도 없다. 매너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잔 속 위스키를 가장 좋은 상태로 마시기 위한 요령에 가깝다. 알아두면 술이 더 맛있어진다. 그게 전부다.
잔은 어디를 잡나
핵심부터 말하면, 위스키 향은 알코올이 등에 업고 올라온다. 온도가 오르면 알코올이 더 활발하게 휘발하고, 그만큼 향 분자도 더 많이 코까지 닿는다. 차가우면 향이 닫히고, 적당히 데워지면 열린다. 잔을 어디 잡느냐는 결국 이 온도를 어떻게 다룰 거냐의 문제다.
손이 닿으면 체온이 술로 간다. 그게 좋을 때도, 아닐 때도 있다는 뜻이다.
글렌케언이나 코피타처럼 다리나 두툼한 받침이 있는 잔은 거기를 잡으면 된다. 와인잔 다리 쥐듯이. 애초에 이 잔들은 볼에 손을 안 대고도 들 수 있게 받침을 만들어 둔 것이다. 향을 차분하게, 따뜻해지기 전 상태 그대로 보고 싶을 때 이렇게 잡는다.

그런데 위스키는 와인과 좀 다르다. 살짝 데워지면 닫혀 있던 향이 풀리는 술이라, 일부러 데우는 게 득이 될 때가 많다. 도수 높은 캐스크 스트렝스 한 잔이 향이 영 빡빡하게 닫혀 있을 때, 잔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몇 분 두면 향이 살아난다. 그러니 "잔 볼을 잡으면 안 된다"는 말은 반만 맞다. 데우기 싫으면 아래를, 깨우고 싶으면 볼을.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그날 그 잔 상태에 맞추는 거다.
물 몇 방울의 힘
도수 높은 위스키 앞에서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기술은 의외로 물이다. 캐스크 스트렝스나 50도가 넘는 한 잔에 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보면, 닫혀 있던 향이 눈에 띄게 열린다. 술을 묽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향을 풀어주는 거다.
여기엔 실제 이유가 있다. 위스키의 좋은 향 성분 중에는 기름기 있는 분자들이 있는데, 도수가 높으면 이것들이 알코올에 붙들려 잔 위로 잘 못 올라온다. 물을 조금 더하면 알코올 농도가 살짝 내려가면서 이 향 분자들이 표면으로 떠올라 코까지 닿는다. 동시에 알코올의 콕 쏘는 자극도 한 풀 꺾인다. 향은 더 나고, 따가움은 줄고.

요령은 두 가지. 첫째, 한꺼번에 붓지 말고 정말 방울 단위로. 물은 더할 순 있어도 뺄 순 없다. 둘째, 40도 근처의 평범한 도수라면 굳이 안 해도 된다. 이미 마시기 좋게 맞춰 나온 술이라 물이 오히려 밍밍하게 만들 수 있다. 물은 어디까지나 빡빡하게 닫힌 고도수를 푸는 용도다.
얼음과 물은 목적이 다르다는 것도 짚어두자. 얼음은 온도를 낮춰 향을 닫는 대신 마시기 편하게 해주고, 물은 온도는 두고 향만 연다. 향을 끝까지 보고 싶은 한 잔이라면 얼음보다 물이 낫다.
향을 맡을 때
향 본다고 코를 잔 깊이 넣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 코가 따끔하다. 알코올 증기가 한꺼번에 올라와 후각을 잠깐 마비시킨다. 한 번 이러면 그 뒤 몇 분은 뭘 맡아도 잘 모른다.

요령은 시시할 만큼 간단하다. 코를 잔 입구 근처에만 살짝 대고, 입을 약간 벌린 채 가볍게 들이쉰다. 입을 벌리면 알코올 자극이 입과 코로 분산되면서, 그 아래 깔린 진짜 향 — 과일이든 바닐라든 피트 연기든 — 이 드러난다. 한 번에 다 맡으려 들지 말고 짧게 여러 번 나눠서. 코는 생각보다 빨리 지친다.
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모금을 넘기고 나서 다시 맡아보면 처음과 다른 게 올라온다. 혀가 알코올에 적응하고, 술이 공기와 더 섞이면서 잔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하게 굴 이유가 없다. 좀 두고, 다시 맡고, 또 한 모금.
코가 무뎌졌다 싶으면 자기 손등 냄새를 한 번 맡으면 어느 정도 리셋된다. 향을 직업으로 보는 사람들이 쓰는 흔한 방법이다.
두 가지만 더. 와인처럼 잔을 세게 빙빙 돌리는 건 위스키엔 과하다. 도수가 높아서 휘저으면 알코올만 확 솟는다. 살짝 기울여 벽을 타고 흐르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향이 중요한 자리라면 향수나 진한 핸드크림은 피하자. 내 향뿐 아니라 옆 사람 코까지 가린다. 같은 이유로 진지하게 시음하는 동안 담배는 잠깐 미뤄두는 게 예의다.
건배 — Slàinte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사람과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슬랑처"쯤으로 들리는 말을 듣게 된다. Slàinte. 게일어로 '건강'이라는 뜻이고, 우리 "건배"에 가장 가까운 인사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는 slàinte, 아일랜드 게일어로는 sláinte — 철자만 다르고 같은 말이다. 제대로 갖춰 말하면 Slàinte mhath(슬랑처 바, "좋은 건강을"). 글자만 보면 막막하지만 "슬란-처" 정도로만 해도 충분히 통한다.

건배 방식은 동네마다 다르다. 스코틀랜드에선 잔을 꼭 쨍 부딪힐 필요가 없다. 가볍게 들어 올리며 눈을 맞추는 쪽을 더 친다. 유럽 여러 곳에 "건배할 때 눈을 안 맞추면 7년간 운이 없다"는 우스개가 있는데, 진담은 아니어도 눈은 맞추고 하는 게 보기 좋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함께 마시는 걸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는, 아예 '같이 나눠 마시는 잔'을 따로 둔 데서도 드러난다. 양손잡이가 달린 쿼익(quaich)이 그것이다. 한 잔을 두 손으로 건네고 돌려 마시는 그 그릇처럼, 위스키 한 잔에도 옆 사람과 함께라는 감각이 깔려 있다.
그리고 하나만. 좋은 싱글몰트를 받았으면 단숨에 털어 넣지 말자. 슬랑처 한 번 하고,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데킬라 샷처럼 원샷하는 건 그 술한테 미안한 일이다. 누군가 10년, 20년을 기다려 내놓은 술이니까.
곁에 물 한 잔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것. 위스키 옆에 맹물 한 잔을 같이 두자. 한 모금 사이사이 물로 입을 헹구면 다음 잔의 향이 더 또렷하게 산다. 도수 높은 술을 길게 마실 때 속도를 늦추고 다음 날을 지켜주는 보험이기도 하다. 좋은 바일수록 묻지 않아도 물을 함께 내주는 이유다.

외울 규칙은 없다. 데우고 싶으면 볼을, 아니면 아래를. 빡빡하면 물 한 방울. 코는 살짝, 입은 살짝 벌리고. 건배는 눈 맞추고 슬랑처. 나머지는 마시면서 천천히 몸에 붙는다. 매너 차린다고 잔뜩 긴장하다 정작 술맛을 놓치는 게 제일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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