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커피에 위스키를 붓고, 그 위에 크림을 얹은 술. 아이리시 커피는 칵테일이라기엔 따뜻하고, 커피라기엔 취한다. 그리고 이 술은 유리잔 하나와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다리가 달리고 손잡이가 붙은, 속이 훤히 비치는 그 잔. 술과 잔은 같은 자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아일랜드 서쪽의 한 공항 바에서.
포인즈, 비행정이 내리던 곳
지금은 조용한 마을이지만, 리머릭주의 포인즈(Foynes)는 한때 대서양을 건너는 관문이었다. 활주로가 필요 없는 비행정(flying boat)이 강 하구 물 위에 내리던 시절, 유럽과 북미를 잇는 승객들이 여기서 뭍을 밟았다. 1930년대 말부터 40년대 초까지의 이야기다.
문제는 날씨였다. 대서양 항로는 폭풍에 자주 막혔고, 몇 시간을 날아가다 회항하는 일도 흔했다. 젖고 얼어붙은 승객들이 한밤중에 터미널로 되돌아오곤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943년 겨울, 이곳 주방을 맡고 있던 조 셰리든(Joe Sheridan)이 이들을 녹여주려 커피에 아이리시 위스키를 탔다. 설탕을 녹이고, 위에 크림을 얹었다. 한 미국인 승객이 브라질 커피냐고 묻자, 셰리든이 답했다고 한다 — "아니요, 아이리시 커피입니다." 이름은 그렇게 붙었다.

대서양을 오가던 팬암 보잉 314 '양키 클리퍼' 비행정(1939). 포인즈에 내리던 것과 같은 종류의 비행정이다. 승객들은 이런 배를 타고 와 물 위에 내렸다.
왜 다리가 달렸나
아이리시 커피가 여느 칵테일과 다른 점은, 이게 뜨거운 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액체를 담은 유리잔은 맨손으로 오래 쥐기 어렵다.
그래서 잔에 다리(스템)와 굽이 붙고, 손잡이가 달렸다. 아래쪽을 잡으면 뜨겁지 않으니까. 손잡이 없는 머그로 마시면 손이 데고, 도자기 잔이면 속이 안 보인다. 아이리시 커피의 잔은 이 둘을 피하려고 지금의 모양이 됐다.

다리와 굽, 손잡이가 달린 투명한 잔. 검은 커피 위에 흰 크림 띠가 얹힌 층이 보여야 아이리시 커피다.
투명한 유리인 것도 이유가 있다. 검은 커피 위에 하얀 크림 띠 — 그 두 층이 또렷이 보여야 아이리시 커피답다. 잔이 불투명하면 이 그림이 사라진다.
층을 만드는 데도 요령이 있다. 커피에 설탕을 충분히 녹여 밀도를 높인 다음, 그 위로 살짝 저은 크림을 숟가락 등에 흘려 얹으면 크림이 가라앉지 않고 뜬다. 마실 때는 이 차가운 크림 층을 통과해 뜨거운 커피가 올라온다. 뜨거움과 차가움, 쓴맛과 부드러움이 한 모금에 겹친다. 크림을 젓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정석인 이유다.
바다를 건넌 잔
포인즈는 1945년 뭍의 섀넌 공항에 자리를 넘기며 문을 닫았지만, 잔은 살아남아 대서양을 건넜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여행 기자 스탠턴 델라플레인(Stanton Delaplane)이 이 술을 미국에 들여온다. 그는 부둣가의 부에나 비스타 카페(Buena Vista) 주인 잭 코플러와 함께 재현에 매달렸는데, 가장 애를 먹은 게 크림이었다. 크림이 자꾸 가라앉아 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낙농업을 하던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 조지 크리스토퍼의 조언으로 실마리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크림을 이틀쯤 숙성시킨 뒤 살짝 휘저어 얹으니 비로소 떠 있었다. 부에나 비스타는 지금도 하루에 수천 잔을 내며, 아이리시 커피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됐다.
잔이 곧 레시피다
아이리시 커피가 특별한 건, 잔이 단순히 담는 그릇이 아니라 만드는 방식의 일부라는 점이다. 다리가 없으면 뜨거워서 못 들고, 불투명하면 크림 층이 안 보이고, 폭과 깊이가 어긋나면 층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잔의 생김새 하나하나가 이 한 잔이 어떻게 마셔져야 하는지를 정해둔 셈이다.
회항한 승객을 녹이려던 공항 바의 즉흥이, 여든 해가 지나도록 거의 그대로 쓰인다. 추운 밤에 마시는 따뜻한 한 잔에는 그 정도 내력이 어울린다.
아이리시 커피 — jules / stone soup, Wikimedia Commons (CC BY 2.0) · 보잉 314 '양키 클리퍼' 비행정(1939) — Harris & Ewing /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 층이 진 아이리시 커피(풋티드 글라스) — Mannivu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