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근교의 식탁에서 유리 주전자 하나가 손에서 손으로 돌기 시작하면, 처음 본 사람은 대개 당황한다. 주둥이가 길고 뾰족한 그 주전자를 얼굴에서 한 뼘쯤 떼어 들고, 가느다란 와인 줄기를 입으로 받아 마시는 것이다. 입술은 끝까지 주둥이에 닿지 않는다. 이게 포론(porró) — 카탈루냐를 비롯한 스페인 여러 지역에서 오래 써 온 와인 주전자다.
처음 보면 묘기 같지만, 사실은 아주 실용적인 물건이다. 잔이 따로 필요 없고, 한 통으로 여럿이 돌려 마실 수 있고, 그러면서도 누구의 입도 주둥이에 닿지 않는다. 묘기처럼 보이는 그 마시는 법 자체에 이 잔의 쓸모가 전부 들어 있다.
마시는 게 먼저 시험이다
요령은 말로 하면 간단하다. 포론을 들고 뾰족한 주둥이를 입 쪽으로 향한 다음, 처음엔 입 가까이에서 시작한다. 줄기가 안정적으로 나오면 팔을 천천히 뻗어 잔을 얼굴에서 멀리 떨어뜨린다. 멀어질수록 와인은 더 긴 포물선을 그리고, 보는 맛도 마시는 맛도 거기서 난다. 멈출 때는 다시 잔을 입 쪽으로 가져오면서 손목을 세워 줄기를 끊는다.
문제는 이게 글로 읽을 때만 간단하다는 점이다. 초보가 처음 시도하면 십중팔구 와인이 턱을 타고 흘러 셔츠를 적신다. 카탈루냐에서는 이 분홍 얼룩을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긴다. 잘 마시는 사람을 비웃지 않고, 흘리는 사람을 보며 웃는 — 그 웃음이 식탁의 분위기를 푸는 역할을 한다. 포론은 그렇게 술을 마시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분위기를 깨는 도구다.
질색한 사람도 있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가담했던 시절을 적은 『카탈로니아 찬가』(1938)에서 포론을 두고 한참을 투덜거린다. 그는 포론을 "기울이면 가느다란 와인 줄기가 솟구쳐, 입을 대지 않고 멀리서 마실 수 있고 손에서 손으로 돌릴 수 있는, 끝이 뾰족한 유리병"이라고 정확히 설명해 놓고도, 정작 자신은 그게 "영락없이 환자용 소변기 같았다 — 특히 백포도주가 담겼을 때"라며 처음엔 컵을 달라고 버텼다고 적었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나 읽어도 첫 사용자의 당혹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주둥이가 둘 달린 까닭
포론을 가만히 보면 입구가 두 개다. 위로 넓게 열린 쪽은 와인을 채워 넣는 구멍이고, 옆으로 길게 뽑혀 나온 가늘고 뾰족한 주둥이 — 카탈루냐어로 피토로(pitorro) — 가 마시는 쪽이다. 이 주둥이 끝이 좁아야 와인이 가는 줄기로 일정하게 나온다. 굵게 나오면 받아 마실 수가 없다. 바닥은 넓고 묵직해서 식탁에 세워 둬도 잘 넘어지지 않는다.
대개는 유리로 만든다. 안에 든 와인 색과 줄기가 다 비쳐 보이는 게 유리 포론의 매력이다. 다만 흙으로 빚은 것도 있는데, 도기는 증발열로 안의 와인을 시원하게 유지해 준다. 여름 한낮의 야외 식사에서는 이쪽이 쓸모가 있다.
이 "입을 대지 않고 마신다"는 방식은 포론만의 것은 아니다. 스페인에는 가죽 부대에 와인을 담아 멀리서 줄기로 받아 마시는 **보타(bota)**가 있고, 카탈루냐에는 물을 같은 식으로 마시는 흙 주전자 **칸티르(càntir)**가 있다. 같은 원리를 공유하는 한 가족인 셈이다.
리톤에서 포론으로
포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론은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것으로, 카탈루냐 포블레트 수도원(타라고나)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입을 대지 않고 줄기로 받아 마신다'는 발상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카탈루냐 민속을 평생 정리한 학자 **조안 아마데스(Joan Amades)**는 포론의 뿌리를 로마의 뿔잔 **리톤(ritón)**에서 찾았다. 끝에 구멍이 뚫린 리톤이 발굴되는데, 이것이 잔이면서 동시에 멀리서 따라 마시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다. 지중해 세계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술을 나눠 마셔 왔다는 이야기다.
유리 포론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데는 카탈루냐의 유리 공예가 큰 몫을 했다. 이 지역은 15세기부터 베네치아의 유리 기법(파송 드 브니즈, façon de Venise)을 들여와 16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맞았고, 그 흐름 속에서 포론도 흙에서 유리로 옮겨 갔다.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쓰던 투박한 그릇이, 입으로 불어 만든 맑은 유리병이 된 셈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바르셀로나산으로 추정되는 베네치아풍 유리 포론 하나가 그 시절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입술이 닿지 않는다는 것
포론의 핵심은 결국 이 한 가지다. 누구의 입도 잔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열 사람이 한 통을 돌려 마셔도 꺼릴 일이 없다. 침이 섞이지 않으니 위생적이고, 잔을 사람 수만큼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위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한참 전에, 이 잔은 이미 "함께 마시되 더럽지 않게"라는 문제를 형태 하나로 풀어 둔 셈이다.
지켜야 할 예의도 여기서 나온다. 입술을 주둥이에 대면 안 된다. 한 사람이 입을 대는 순간 그 다음 사람부터는 돌려 마실 수가 없어지고, 포론이 포론인 이유도 사라진다. 그리고 다 마셨으면 줄기를 깔끔하게 끊어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규칙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같이 마시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식탁을 도는 잔
포론이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는 격식 없는 식사다. 카탈루냐의 봄철 명물인 칼소타다(calçotada) — 숯불에 구운 대파 비슷한 칼솟을 손으로 집어 소스에 찍어 먹는 야외 잔치 — 에 가면 포론이 빠지지 않는다. 손은 소스로 지저분하고, 사람은 많고, 분위기는 떠들썩하다. 잔을 일일이 돌리고 채우는 것보다 포론 하나가 식탁을 도는 편이 훨씬 어울리는 자리다.

한때 촌스럽다고 밀려나기도 했지만, 최근 바르셀로나의 바와 식당에서는 포론을 일부러 되살리는 흐름이 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 통을 돌리다 보면 금세 말이 트인다는 걸, 다시들 알아챈 것이다. 잔 하나를 나눠 쓰는 일에는 그런 힘이 있다.
스코틀랜드에 양손으로 건네는 쿼익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고 도는 포론이 있다. 쿼익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신뢰의 잔이라면, 포론은 거리를 둔 채 나누는 잔이다. 두 잔이 나눔에 이르는 방식은 정반대지만, 술은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는 결론은 같다.
요령은 결국 몸으로 익힌다. 처음엔 가까이서, 자신이 붙으면 조금씩 멀리. 입술은 대지 말고, 다 마셨으면 줄기를 끊어 옆으로. 분홍 얼룩 몇 번은 각오하는 게 마음 편하다. 오웰조차 끝내 정을 붙이지 못한 잔이지만, 그가 못마땅해하면서도 그토록 자세히 적어 둔 걸 보면 이 잔이 어지간히 인상적이긴 했던 모양이다. 스페인 식탁에서 포론이 돌아오거든, 잘 마시려 애쓰기보다 그냥 한 번 흘려 보는 쪽을 권한다. 거기서부터가 그 식탁에 낀다는 뜻이니까.
조지 오웰의 포론 묘사 — George Orwell, Homage to Catalonia (1938) · 포론의 기원(리톤·조안 아마데스), 현존 최고(最古) 사례(포블레트), 베네치아풍 유리 — Wikipedia "Porro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해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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