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재료는 의외로 단출하다. 곡물, 물, 효모.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셋이 한 병의 술이 되기까지는 여덟 단계를 거치고, 단계마다 작은 갈림길이 있다. 어떤 곡물을 쓰는지, 연기를 입히는지, 어떤 통에 몇 년을 재우는지 — 그 선택이 쌓여 라프로익과 맥캘란처럼 전혀 다른 술이 갈린다.
보리밭에서 잔까지, 그 여덟 단계를 차례로 따라가 본다.
01. 재료 — 곡물에서 성격이 갈린다
위스키의 뼈대는 곡물이다. 무엇으로 빚느냐에 따라 술의 방향이 먼저 정해진다. 보리는 싱글몰트의 정석이고, 옥수수는 버번의 묵직한 단맛을, 호밀은 알싸한 개성을, 밀은 둥근 부드러움을 낸다.
거둔 곡물은 바로 쓰지 않는다. 서늘하고 통풍 잘 되는 곳에 말려 안정시킨다. 특히 몰팅에 쓸 보리는 싹 틔울 힘을 살린 채 보관해야 한다.
02. 몰팅 — 단맛의 출발, 그리고 피트라는 갈림길
곡물 자체에는 전분만 있고, 그걸 당으로 바꿀 효소가 없다. 그래서 보리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운다. 발아하며 곡물이 스스로 효소를 만들어내고 — 위스키의 단맛은 여기서 시작된다. 싹이 적당히 자라면 가마에 넣어 말려 멈춘다.
여기서 향의 첫 갈림길이 나온다. 무엇으로 불을 때 말리느냐다. 스코틀랜드 일부 증류소는 피트(이탄) 를 땐다. 이탄지에서 이끼와 헤더가 수천 년간 물에 잠겨 반쯤 썩어 굳은 흙인데, 이걸 태운 연기가 몰트에 배어 스모키한 향을 남긴다.
향의 세기는 ppm으로 재고, 일찍 — 몰트가 아직 젖었을 때 — 연기를 입혀야 잘 붙는다. 라프로익이나 아드벡 같은 아일라 위스키가 이 길을 끝까지 밀어붙인 쪽이다. 반대로 세계 대부분의 싱글몰트는 피트 없이 뜨거운 바람으로만 말려, 곡물 본연의 깨끗한 단맛을 남긴다.

03. 분쇄 — 곡물을 갈아 그리스트로
말린 몰트를 롤러밀에 거칠게 간다. 이 가루를 그리스트(grist) 라 한다. 너무 곱게 갈면 당화 때 막히고, 너무 굵으면 당이 덜 우러난다 — 그래서 껍질·굵은 가루·고운 가루의 비율을 정밀하게 맞춘다.
옥수수·밀·호밀처럼 전분이 단단한 곡물은 여기서 고온·고압 증기로 쪄서(쿠킹) 전분을 풀어준 뒤 당화로 보낸다. 버번이 이 방식이다.
04. 당화 — 뜨거운 물로 당을 우려낸다
그리스트를 매시툰(mash tun) 에서 뜨거운 물과 섞는다. 핵심은 온도다. 끓이지 않고 64℃ 안팎으로만 — 더 뜨거우면 애써 만든 효소가 죽어버린다. 효소가 전분을 당으로 바꾸면 달콤한 액체가 우러나는데, 이걸 워트(wort) 라 부른다.
05. 발효 — 비로소 '술'이 된다
식힌 워트를 워시백(washback) 에 옮기고 효모를 넣는다.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표면이 거품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보통 48~72시간 발효해 알코올 7~9% 의 워시(wash) 가 된다 — 사실상 맥주에 가까운 술이다. 발효가 길수록 과일·꽃 향이 더 살아난다.
06. 증류 — 끓여서 알코올만 모은다
여기서 싱글몰트와 그레인이 크게 갈린다. 싱글몰트는 구리 단식 증류기(pot still) 로 두 번 끓인다. 1차로 약 21%의 '로 와인'을 얻고, 2차로 약 70%까지 올린다. 구리가 잡내를 잡아줘 깨끗한 풍미가 남는다.

2차 증류액은 세 토막으로 나뉜다. 초류(head) 는 거친 성분이라 버리고, 가운데 중류(heart) 만 받는다. 후류(tail) 는 무거운 잡미라 다시 버린다. 어디서 끊을지 정하는 게 증류사의 손맛이다.
한편 그레인위스키는 키 큰 연속식 증류기(column still) 를 쓴다. 멈추지 않고 연속으로 증류해 한 번에 94% 이상까지 올리는, 가볍고 깨끗한 대량 생산 방식이다.
증류를 마친 술은 색 없이 투명한 뉴메이크 스피릿이다. 향은 또렷하지만 아직 거칠다. 색과 부드러움, 깊이는 다음 단계가 만든다.
07. 숙성 — 위스키의 60~70%가 여기서 정해진다
뉴메이크를 오크 통에 담아 수년을 재운다. 놀랍게도 위스키 색과 풍미의 60~70% 가 이 통에서 나온다. 핵심은 전에 무엇을 담았던 통이냐 — 그 잔향이 술에 그대로 옮겨붙는다. 버번을 담았던 아메리칸 오크는 바닐라·꿀·코코넛을, 셰리를 담았던 유러피언 오크는 건포도·견과·다크초콜릿을 낸다. 맥캘란이 셰리 캐스크에 모든 걸 건 대표적인 예다.
통은 숨을 쉰다. 여름엔 술이 나무에 스미고 겨울엔 빠져나오며 깊어지는데, 그사이 해마다 약 2%가 증발한다 — 이걸 엔젤스 셰어(angel's share), 천사의 몫이라 부른다. 스코틀랜드는 최소 3년, 보통 10년 이상 재운다.
08. 병입 — 마침내 한 병으로
다 익은 술은 통에서 꺼내 병에 담는다. 여러 통을 섞어 맛을 고르게 맞추기도 한다(배팅). 보통 물을 더해 도수를 40~46% 로 낮추고 — 통에서 나온 도수 그대로면 캐스크 스트렝스다 — 차게 식혀 뿌옇게 만드는 지방 성분을 걸러낸 뒤(칠 필터링) 병에 채운다.
같은 재료, 다른 술
곡물·물·효모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도, 피트를 땠는지·단식이냐 연속식이냐·어떤 통에 몇 년을 재웠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나온다. 위스키를 고를 때 라벨의 '싱글몰트', '셰리 캐스크', '캐스크 스트렝스' 같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조금은 보일 것이다.
어떤 공정의 술이 내 입에 맞을지 궁금하다면 내 위스키 찾기에서 다섯 가지 질문으로 가늠해 볼 수 있고, 브랜드별로 어떻게 다른지는 위스키 브랜드에서 하나씩 짚어 두었다.
